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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스토리/부산43

[부산] 3호선 종합운동장역 역명 유래 조선중기 동래부 서면 거벌리로 불리다가 거평동으로 불려졌으며, 2002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종합운동장)이 위치하여 종합운동장으로 명명함.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한 ‘작은부산’ 사직야구장 (출처: VISIT BUSAN) 부산하면 야구, 야구하면 부산을 떠올릴 정도로 부산의 야구사랑은 유별나다. 세계 어느 스포츠팬보다도 유별난 부산 사람들의 야구 사랑으로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통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야구장은 특색 있는 응원문화가 여럿 있다. 비짓부산 부산 공식 관광 홈페이지, 부산여행, 부산광광, 부산여행의 모든 정보 www.visitbusan.net 역사 상세정보 나무위키 종합운동장역 ▶ 지하철종결자 지하철 앱의 종결자! Smart Subway 새로운 .. 2021. 11. 15.
[부산] 2호선 해운대역 역명 유래 유학자인 최치원이 동백섬 일대의 절경에 심취하여 동백섬 남쪽의 암벽에 자신의 호인 해운을 따서 해운대라는 글자를 새긴 것에서 유래.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일출과 월출 모두를 품은 달맞이길 & 문탠로드 (출처: VISIST BUSAN) 해운대 삼포길의 시작점이자 갈맷길 1코스와 2코스를 잇는 길. 월출이 아름다운 부산의 인기 드라이브 코스. 낮에는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밤에는 달빛을 맞으며 걷는 길. 파리에 몽마르트 언덕이 있다면 부산에는 달맞이길이 있다. 비짓부산 부산 공식 관광 홈페이지, 부산여행, 부산광광, 부산여행의 모든 정보 www.visitbusan.net 역사 상세정보 나무위키 해운대역 ▶ 지하철종결자 지하철 앱의 종결자! Smart Subway 새로운 차원의 지하.. 2021. 11. 15.
[부산] 2호선 민락역 역명 유래 수영의 진산 앞의 마을로 수영강의 어귀를 접한 놀이터인 까닭에 여러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경치라는 데서 붙임. (여민동락)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강물 따라 유유히 카약을 즐기다 (출처: VISIT BUSAN) 해마다 여름이 되면 이번엔 어떤 방법으로 무더위를 피해볼까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많이 바쁘셨죠?^^ 꼼짝 않고 실내에서 에어컨만 켜 놓고 있을 순 없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많은 경비를 지출할 수도 없어요. 특히나 요즘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비짓부산 부산 공식 관광 홈페이지, 부산여행, 부산광광, 부산여행의 모든 정보 www.visitbusan.net 역사 상세정보 나무위키 민락역 ▶ 지하철종결.. 2021. 11. 15.
[부산]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 역명 유래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비롯되며,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다다라(多多羅)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으며, 따라서 국방상 중요한 요새지였다. 조선 세종 때는 이곳에 수군만호영을 설치, 수군 123인과 병선 9척을 배치하였고, 성종 때는 높이 4m, 둘레 560m의 다대포진을 축성한 바 있으며, 임진왜란 때 다대포첨사였던 윤흥신(尹興信)과 그 동생 흥제(興悌)가 왜군과 접전을 벌여 전사한 유서 깊은 곳이다.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아름다운 다대포해수욕장 (출처: VISIT BUSAN) 낙동강과 남해안이 만나 양질의 모래밭을 만든 곳, 일출과 일몰 조망지로 부산 최고인 곳, 다대포해수욕장은 자연이 주는 황홀경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기.. 2021. 11. 15.
[부산] 1호선 괴정역 역명 유래 괴정동(괴정동)은 사람들이 살기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아온 곳이다. 괴정동의 뒷 줄기인 속칭 ''''아래머리'''' 구덕산을 ''''용호부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낙동강쪽으로 뻗어내린 줄기를 이렇게 부르며 풍수지리설에서 온 이름인 듯하다. 구덕산의 강안(江岸)에 뻗 은 말맥(末脈)이 병풍처럼 둘러져서 세찬 폭풍과 낙동강을 불어 내려온 강풍을 막아주고, 동쪽에는 시약산이 솟고, 남쪽에는 금티산이 솟아 그 줄기가 서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을 이루어 해풍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지금의 괴정동을 옛날에는 목장리라 했다. 이 괴정동 주위는 조선시대에는 국 마(國馬)를 기르는 목장이었는데 이 괴정동의 목장이 가장 규모가 크고 목장으로서 중심지.. 2021. 11. 15.
[부산] 1호선/2호선 서면역 역명 유래 서면(西面)은 현재 부산의 중심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교통·산업·유통·금융 등의 중심지라 할 수 있을 만큼 번화한 곳이다. 이곳은 행정상으로 부산진구 부전동에 속하여 있다. 서면이라는 명칭은 본래 조선시대 동래군에 속하는 면이었다. 1904년 간행된『경상도동래군가호안』에는 서면이 서상면과 서하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서면이라 불리는 지역은 서하면의 부전리 일대로서 서상면·서하면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전동은 조선시대『동래부지(1740)』에는 동래부 동평면 부현리(釜峴里)에 속하였다. 부현은 지금의 부암고개로 추정된다. 부전동은 부현리 중에서도 범전리와 전포리에 인접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며, 1936년 시·군의 구획정리 때 부전동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출처: 부산교통공.. 2021. 11. 15.
[부산] 1호선 부전역 역명 유래 부전동은 조선시대에 동래부 동평면 부현리에 속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부다대현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당감동, 즉, 감물리에서 지금의 부암교차로 밑인 고대리로 난 고개라는 설이있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하마정에서 양정동 송상현공 동상까지의 마비현의 별칭이라는 설이다. 이중에서 부다대현은 부산포에서 다대포로 넘어가기 위해 넘는 고개로 위치상 합당치 못하며, 마비현은 광복 이후까지도 모너머고개 머나머고개로 불리어 왔다. 따라서 부현리의 지명은 감몰리에서 고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현 당감동 입구인 부암고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에는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치 가마솥(釜)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부현(가.. 2021. 11. 15.
[부산] 1호선 자갈치역 역명 유래 충무동 해안통 주변의 생선상인들이 1946년 10월에 생어상조합(임의단체)을 결성하게 된 것이 오늘날 자갈치 시장이 생기게 된 효시이며. 원래 남항 일대의 용두산 쪽 자갈돌이 많아 자갈치로 불렸으며, 일본강점기에는 남민정으로 지칭되다가 해방 이후 영도의 남항동에 대하여 남포동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자갈치'란 지명은 자갈 해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활어'만 거래되는 자갈치란 어종의 명칭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출처: 부산교통공사 홈페이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떠나는 부산 역사 여행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갈치역 4·6·8·10번 출구로 나오면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시장이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중구 일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떠나는 부산 역사.. 2021. 11. 1.
[부산] 1호선 남포역 역명 유래 용두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포(南浦) 일대의 바닷가를 자갈치라 한다. 이 자갈치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이다. 남포동 바닷가 쪽에 시장과 횟집이 들어서 있어 자갈치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자갈치는 본래 자갈+치로 구성된 지명이다. 이 지명은 이 해안이 매립되기 전에 이미 명명된 것으로 본래 주먹만 한 크기의 옥돌 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자갈 해안이었기 때문에 명명된 것이다. '치'는 '언저리, 언덕배기'라는 뜻이니 이에 '자갈치'는 '자갈 언저리'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명명된 지명이다. 지금은 그 아름다운 바닷가의 경치는 볼 수 없고 이름만 남아 과거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남포동'은 '남포'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포는 영도대교 (일.. 2021. 11. 1.
[부산] 1호선 중앙역 역명 유래 영선산 아래 골짜기의 맞은편 산봉우리가 해면(海面)에 돌출해 있었다. 이 두 개의 봉우리는 용두산의 좌청룡 등(左靑龍嶝)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 봉우리의 사이에는 논이 있었는데 그곳을 논치라고 불렀으며, 산 아래의 좌우에는 논치 어장이 있었다. 이 논치 어장은 현재의 중부경찰서 남쪽에 있는 중앙동 지역 내의 유일한 고유지명으로 알려진 것이다. 개항 이후 중앙동 거리 바로 아래 지역은 바닷가였으므로 당시에는 시가지의 발전은 어려웠다. 당시 초량왜관은 11만 평이라 하지만 그 중앙에 용두산(龍頭山)이 자리하고 있어 실제 사용 가능한 면적은 7만 평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안을 매축하여 시가지를 형성할 목적으로 1902년에 부산매축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이를 중심으로 북빈매축공사가 추진.. 2021. 11. 1.